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시라카와 덴노 (문단 편집) === [[인세이]] 재개 === 헤이케의 영걸이었던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사후, 그 후계자가 된 타이라노 무네모리는 >“만사를 오로지 인센에 따라 결정하고 행할 것”(《교쿠요》 윤2월 6일조) 이라며 고시라카와인에게 숙이고 들어가는 저자세를 보였다. 무네모리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고시라카와인은 구교 의정을 열어 추토 중단을 결정했다. 세이겐이 무네모리에게 의정에서의 결정을 전달하자 무네모리는 추토사로서 타이라노 시게히라(平重衡)를 내려보낸다는 이유로 추토를 위한 인쵸의 하문을 발급할 것을 요구했다. 세이겐이 >“그렇게 되면 얘기가 달라지오.” 라며 항의하자 무네모리는 >“요리모리·노리모리 등의 경(卿)을 불러 상의하시고 다시 아뢰시오” 라며 반답했다(《교쿠요》 윤2월 7일조). 친헤이케파였던 시조 다카스에(四条隆季)와 나카하라 다다치카가 타이라노 무네모리의 뜻에 따라 하문 초안을 작성했는데(《교쿠요》 윤2월 9일조) 고시라카와인은 초안을 보고 불편한 뜻을 보이며, 반발했지만 결국 무네모리의 압력으로 추토를 명하는 하문을 발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군사문제에 관해서는 헤이케가 주도권을 쥐게 되었고, 고시라카와인의 뜻은 반영되지 못했다. 고시라카와인은 도고쿠(동국) 추토 문제에 대해서는 융화책을 내세웠다. 그는 [[카와치 겐지]]의 수장이었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로부터 온 밀주(密奏)를 받아들여 타이라노 무네모리에게 화평할 것을 타진했는데, 화평안의 내용은 >“예전대로 겐지와 헤이시를 나란히 불러들여 (주상을) 섬기게 하라” 는 헤이케의 입장도 배려한 듯 보이는 것이었지만, >“나의 아들과 손자로서 단 한 명이 살아남는다 해도, 그 시신은 요리토모 앞에서 내보여라” 고 했다는 키요모리의 유언을 언급한 무네모리의 거절로 조정은 실패로 돌아갔다(《교쿠요》 8월 1일조). 이 시기에 고시라카와인은 헤이케의 압력에 맞서 하치조인과 긴밀하게 제휴하고 있었다. 나아가 4월 10일에 어린 안토쿠 덴노를 하치조의 요리모리 저택에서 간닌(閑院)으로 옮기고(《깃키》), 11월 25일에 타이라노 도쿠코에게 원호를 내리며 덴조비토(殿上人, 전상인)를 스스로 정하는 등(《메이게쓰기》(明月記) 12월 1일조) 천황과 그 모후를 헤이케로부터 격리시키려고 했다. 이듬해 요와(養和) 2년(1182년) 3월에는 후지와라노 사다이에(藤原定能)·후지와라노 미쓰요시(藤原光能)·다카시나노 야스쓰네(高階泰経)가 다시 조정에 복귀하여 >“지난 지쇼 3년에 해관되었던 자들, 지난 겨울과 이 봄에 관위를 받았던 자들이 반 넘게 돌아온”(《교쿠요》 3월 9일조) 형세가 되었다. 지쇼 3년의 정변으로 괴멸 상태가 되었던 인세이파가 다시 전열을 정비하는 것에 대해 헤이케는 경계심을 품게 되었고, 4월 15일에 고시라카와인이 히에이 산(比叡山)에 행차했을 때, 승병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소문이 나돌자 타이라노 시게히라가 병사를 거느리고 출동해 소란이 일었다(《햐쿠렌쇼》, 《교쿠요》). 다만 구조 가네자네로 대표되는 귀족층은 한 발 물러나서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고, 고시라카와인도 갑자기 모든 주도권을 쥐지는 못했다. 고시라카와인은 헤이케에 대한 협력 자세를 보이면서 여러 쿠니의 장원에 인센(院宣, 인선)을 내려 군량을 징수하게 했다(《깃키》 3월 17일조, 26일조). 그러나 '''요와의 기근'''(養和の飢饉)이라는 기아 사태의 영향으로 군량 징수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요시다 쓰네후사는 >“만민의 근심이 한 사람에게 몰린 것이 단지 이것뿐이랴” 라며 개탄했다. 8월 14일에 고시라카와인은 제1황녀인 료코 내친왕(亮子 内親王)을 새로운 안토쿠 천황의 준모로 들여 황후로 삼았다(《깃키》 및 《교쿠요》). 안토쿠 천황의 준모로는 지금까지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후원을 받았던 고노에 미치코(近衛通子, 모토자네의 딸)가 뽑혔었다. 준모는 금중을 드나들며 주요 행차 때는 어린 천황과 같은 가마를 타는 등의 중요 기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정치의 주도권을 빼앗기 위해서 필요한 처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9월에는 대상회 준비 문제로 추토는 인센으로 중지되었다(《깃키》 9월 14일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